오늘을 기억하며

20여년을 함께한... 2005-04-02 11:56

靑廊(청랑) 2006. 5. 20. 10:27
어제 치과에 갔다. 왼쪽 아래 사랑니를 빼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래 위 모두 네개의 사랑니가 있다. 사랑니가 나올 무렵 남들은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나는 전혀 통증이 없이 사랑니가 나왔다.

 

사랑니는 관리를 잘 못하면 썩기가 쉽단다. 관리를 못해서 그런지 왼쪽 아래 사랑니는 오래 전에 떼웠었는데, 몇 년 전에 떼운 자리가 떨어져 나갔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다시 떼울 필요는 없고 그냥 놔 두다가 나중에 빼라고 하였다.

 

이틀 전 밤에 간식을 먹고 나서 이쑤시개로 그 사랑니에 끼인 찌끼를 후볐는데 그만... 썩은 부위가 떨어져 나갔다. 아픔은 없고 다만 부러진 이빨의 날카로움에 혀가 닿아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결국 어제 아침 치과를 갔다. 어금니를 뽑는다 생각하니... 왠지 모를 공포가 느껴졌다.

 

먼저 어금니의 X 선 사진을 찍고... 치료대에 앉아 있으니 의사가 말하기를

 

"이 뿌리를 보고 나서 제가 뽑을 수 있으면 뽑고 아니면 다른 병원을 추천해 드리죠." 한다.

 

사진을 보았는지 자신이 뽑을 수 있다고 하면서 마취를 준비하였다.

 

이 치과는 아들 녀석의 이를 교정 하던 곳인데, 한 달 전에 왔을때와는 달리 간호원들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낯 익은 간호원들이 있었으면 심적으로 부담이 덜 하였을텐데 모두 새로운 얼굴들이고 어려보여 경험이 미천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취를 하고 나서 약기운이 돈 후에 이를 뽑는데 간호원의 서투름이 확연하였다. 의사가 일일이 도구의 사용방법을 알려 줘 가면서 이럴 땐 위 아래로 움직이며 피를 빨아내고, 저럴 땐 이렇게 해서 시야를 확보하고.. 등등

 

입을 벌리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마취 덕에 아픔은 없었으나... 간호원의 서툼에 잘 될까 걱정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들이 긴장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이완을 하였다.

 

어쨌거나... 이는 뽑히고... 꿰메고 난 후에 간호원이 거즈를 물리며 두 시간 동안 꽉 물고 있으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도 뱉지 말고... 두 시간은 꽉 물고 있어야 지혈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발치시 주의사항 이라고 적인 종이를 주며 잘 읽어 보라고 한다....

 

병원을 나서며 이를 악물었다. 20여 년 함께 하던 나의 사랑니...

 

아픔 없이 다가와서는

사랑에 눈 뜨게 하더니

오고 감이 분명하게

20여년의 정을 끊고

오늘 홀연 떠나 가는구나.

 

피를 막는다고 이를 악물지만

아마도 허전함을 메울 몸짓이리라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자... 입술이 간질 간질 ... 혀가 찌릿찌릿 하다... 다행히 발치로 인한 통증은 없다.

 

아직 혀 놀림이 익숙치가 않다. 왼쪽으로 혀를 움직이는 순간 허전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이 허전함도 익숙해 지겠지...